음악인이 털어놓는 ‘비음악적’인 이야기들...
사진 촬영도 같이 진행할 것이라는 말에 낯빛이 달라진다. 무슨 연예인이 표정 관리 하나 제대로 못한담? 그래도 몇 마디 오가는 사이 금세 ''우락부락한 것은 몸매뿐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해 본다. 평소 허접한 음악 들고 나와 설치는 뮤지션들에 대해서는 갖은 비난을 감수하고라도 냉철하게 펜을 휘두르기로 악명 높은 ''오이뮤직''에서 그를 만나는 것에 의구심을 가질 독자가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음악 ''외''적인 부분들에 포커스를 두는 것도 좋을 듯 싶었던 거다. 그래서 그를 다루게 된 거고.
싫고 좋음이 분명한 성격 탓에 뜻하지 않은 오해나 모함이 끊이질 않았다고 한다. 애가 탄 매니저들이 ''가끔씩은 우리 얼굴 봐서라도 좀 참고 대충 넘어가고 그래라''하며 사정 하지만 좀처럼 바뀔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괜히 방송에 나와서는 깨끗하고 순수한 사람인 척 하지만 실제 생활은 그렇지 않은 동료들을 많이 봐 왔기에 거짓웃음 짓고 ''연기'' 하는 일이 싫은 거다. 그냥 보여지는 모습 그대로가 솔직한 자기 자신의 모습이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이제 갓 20대 중반에 접어 든 젊은 친구이기도 하다. 오랫동안 보아 온 탓에 ''나이 속이는 거 아니야?'' 싶긴 하겠지만.
가끔씩 ''주동자''로 몰리기도 한다. 너무 섭섭하고 눈물이 날 것 같은 일이 많았다. 예를 들어 한 때 인기 정상의 모 댄스 그룹이 나이트 클럽에서 광란의 밤을 보낸 것이 일간 스포츠 지에 대서특필된 적이 있었다. 청소년 선도 명예 홍보 대사라는 사람들이 이래서야 되겠냐는 질타가 빗발쳤다. 그런데 문제는 불똥이 그에게 튄 것이다. 김종국이 꼬드겨 물버려 놓은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그런데 억울하다. 춤추는 건 좋아하지만 나이트 문화는 체질상 맞지 않고 그런 곳에서 어울리는 것 자체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당시 형, 형 하면서 잘 따르던 H 그룹 멤버들과 친하게 지낸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놀지는 않았다 한다.
그들과는 포장마차에서 대작했다. 방송 일에 관해서는 일언반구 없었고 삶에 대해 인간대 인간으로 만나 얘기 나눈 것이 전부다. 좋은 동생들인데 아무렴 안 좋은 영향을 끼치려 들었겠냐는 거다. 덕분에 터보가 욕먹고 아무 죄 없는 마이키(Mikey)까지 생각 없는 아이로 싸잡아 비난받았던 것이 억울하다. 하지만 참고 넘어갔다.
조성모, 유승준, 차태현, 홍경인 등이 함께 하는 용띠 연예인 모임이 방송가에 회자되고 토크 쇼에 초빙되었을 때도 그랬다. 차태현이나 김종국의 방송에 비친 모습을 보고 건방지다느니 무성의하다느니 했다. 하지만 그들 생각은 다르다. 이들은 그저 친한 친구들 사이일 분이고 일부러 용띠 연예인 모임이라 밝힌 것도 아니었기에 그런 자리가 부담스러웠던 것. 그래서 방송 전 작가들과 입 맞출 때에도 이런 부분, 저런 부분은 콘티에서 빼달라 요구하고 했으나 잘 반영이 안 되었던 것이다. 그냥 연예인의 입장을 떠나 친한 친구 사이로 서로 돕고 함께 즐거워하고 아파하는 사이이길 바랐던 것.
터보의 반쪽 김정남이 퇴출당했다고 보도된 사건이 있었다. 1997년으로 기억한다. 평소 선배나 연장자 알기를 하늘 같이 하는 그이기에 김정남을 믿었고 또 당시 갓 20대 초반의 나이였던지라 세상 물정에도 밝지 못해 그냥 쉬니까 좋았다고 밝힌다. 그렇지 않아도 스키장 가고싶어 죽을 지경이었는데. 결과적으로는 김정남이 사기 사건에 연루되어 피해를 본 것이란다. 자세한 내막을 밝히길 꺼리는 듯 해 ''진실을 상세히 밝혀 보시죠'' 할 수는 없었다. 다만 뭔가 흑막이 개입된 일이라는 말은 했다. 힘있는 사람이 언론을 쥐고 흔들어 사람 하나를 완전히 바보로 만든 것이었다는 거다. 지칠 대로 지친 상황이었고 연예계라는 곳에 환멸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도 잡힌 스케줄은 다 해냈고 할 말 다하지 않고 참기로 했다. 하지만 대신 마음을 굳게 걸어 잠그게 되었다. 자신에게 웃는 낯으로 다가오는 사람에게도 ''이 사람이 왜 그러는 걸까?'' 하는 의구심을 품게 되었고 세상이 아무리 자신을 속여도 ''나만 옳다면 그만이지!''하는 신조를 저버리게되었다. 결국 그는 스스로를 더욱 깊숙한 곳으로 끌고 갔다.
하지만 제일 큰 사건은 소위 ''괘씸죄''가 적용된 1999년 세모의 ''불성실 무대 사건''이다. 그가 불성실한 무대 매너를 선보인 것으로 비쳤다면 그 점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사람들의 반응이 한결같이 ''걔는 왜 그랬지?''만 되풀이 할 뿐 ''무슨 사정으로 그랬을까?'' 하는 부분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았다는 점이 그를 무척 속상하게 한다. 사실 방송 전에 안 좋은 일이 있었다. 연말 연시라 그런지 하루 방송 스케줄이 16개나 되던 끔찍한 날이었고 그래도 즐겁게 일에 임했다. 리허설 시간에 조금 늦었다. 하지만 생방송도 아니고 아직 자기들 순서도 아니기에 여유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담당 작가가 필요 이상으로 성질을 부려 참았던 감정이 폭발했다. 언성이 높아지자 주위 스태프들이 몰려 들었고 이 와중 김종국의 감정이 많이 상했다. 아직 한국어에도 능숙치 않고 나이 어린 마이키 걱정도 되었고.
다들 방송하지 말고 그냥 가자고 했지만 그는 그래도 무대에 오르겠다고 했고 열심히 최선을 다하리라는 생각과 달리 표정도 굳고 안무도 시원치 않았나 보다. 마침 정부 고위층이 그 방송을 시청하다가 방송국에 전화를 걸어왔단다. 일은 그렇게 된 거였다. 분명 잘못했지만 그렇다고 마약 상습 복용 연예인이나 음주 운전, 스캔들 등으로 물의를 일으킨 연예인들은 잘도 봐 주면서 ''청와대''를 거론하며 ''딴 방송이면 몰라도 이번엔 안 돼!''라고 말한 것은 참 서글프다. 그의 새 천년은 이토록 암울하게 밝았다.
분위기가 무겁다. 앨범 녹음 작업이 한창이라 며칠 밤을 녹음실에서 지새웠다는 친구 불러다 놓고 별로 기억하고 싶지도 않을 이야기들만 나눈 건 아니었는지. 그래도 지나온 일은 다 ''추억''이고 설사 씁쓸한 미소로 남을지언정 소중한 것이 아니던가. 더 어린 시절 이야기부터 거슬러봤다. 김종국의 어릴 적 꿈은 의사였다. 아픈 사람을 척척 고쳐주는 의사 ''선생님''의 멋진 모습이 그렇게 부러웠고 커서 꼭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사실 큰 형은 실제로 레지던트 과정을 밟고 있다. 부모님의 소망도 그랬지만 점차 머리 굵어지면서 그런 일이 자신의 적성과는 맞지 않음을 새삼 깨달았고 의대에 입학할 성적이 못되었던 자신에 대한 자각도 있었다. 늘 공부 잘하고 모범생이라 칭찬만 받던 친형에 대한 콤플렉스도 적지 않았던 것 같다. 그것이 어른들에 대한 ''반항심''으로 자라나 사고도 좀 치고 그랬는데 그 때에도 나름의 소신이 있었다. 옳지 못한 사람들을 혼내주는 일에 앞장서려 했다. 학교 선생님들과는 잘 지냈다. 가끔 두들겨 맞기도 했고 또 그만큼 대들기도 했지만 졸업 후에도 웃는 낯으로 뵐 만큼 인간적인 면에서는 소홀함이 없었다니.
그의 초기 보컬에서 록적인 창법이 감지된다면 그건 아마 그가 학창 시절 록 밴드에 몸담았던 까닭이 아닐까 한다. 하지만 록 음악에 조예가 있어서라기보다는 노래 부르는 게 좋아서였다. 진짜 좋아한 건 춤추는 거였다. 지금도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악 스타일이 록 필이 가미된 댄스 음악인 것에 이유가 있었다. 노래도 즐겁고 춤 춰도 신나고.
그는 수줍음이 많은 사람이다. 남들 앞에서 노래하는 게 아직도 많이 쑥스럽다. 맨날 집에 틀어박혀 혼자 노래 연습하곤 했다. 그런데 알게 모르게 슬쩍 넘어간 변성기 탓인지 음역이 꽤 높다. 정확히 재본 적은 없지만 3옥타브 A(라)까지는 진성으로 낼 수 있다. 가성은 연습해도 잘 안 된다. 음폭이 넓다고 통하는 여자 가수 이상이다. 그래서 그런지 고교 시절 음악 시간 실기 점수는 늘 55점-당시 최하 점수-였다. 자신을 잘 모르던 시절이라 다른 애들처럼 굵은 목소리로 노래하려니 저음은 안 내려가고 감정도 제대로 잡히지 않아 거의 국어 책 읽는 음치 수준이었단다. 노래방이란 게 생기고 나서야 자신이 고음에 강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결국 나름의 발성법으로 자신 있는 음역대에서 노래하려는 것 뿐이라고 한다. 일부러 고음 많이 올라간다고 잘난 체 하려는 것은 아니고 그렇게 불러야 자기도 편하고 맛이 난다니.
지난 ''98년 삼수생이라는 딱지를 떼고 늦깎이 대학생이 되었다. 당시 사람들은 의아해 했다. 연예인이면 점수 후할 연극영화과는 실용 음악과 그런 데 가지 뭐하러 대중 음악과는 상반일 클래식을 전공하느냐고. 나름대로는 좀 더 체계적으로 이론적인 부분을 학습해 철저한 대중 취향의 가요라 해도 ''싸구려''는 아닌 것으로 인식되게 하고픈 욕심이었다. 본래적인 의미에서의 ''대중성''은 그다지 부정적인 의미를 가지지 않는 것. 실전 경험이야 자신이 훨씬 앞설테지만 아무래도 여럿부터 전공하던 친구들에 따라가려니 힘에 부치고 수업에 빠지는 날도 많아 적응하기 힘들었다. 그래도 과 친구들이 형-, 오빠- 하면서 많이 챙기고 도와줘서 이제는 어느 정도 재미를 붙였다. 보다 전문적인 사고를 가진 대중 음악 뮤지션이 되기 위해서이다. 음악에 대해 보다 깊고, 넓게 그리고 진지하게 생각하는 방법을 배워나가는 중이라고 했다. ''음악은 단순히 소리''라고 생각했던 지난날의 자신을 반성하고 있고.
그래도 인간적으로 예전보다는 많이 나아지고 붙임성도 조금씩 생겨나더란다. 그 일례로 전에는 노래 하나 떴다고 버릇없이 행동하는 나이 어린 가수 애들 눈뜨고 봐 넘기기가 죽기 보다 힘들었는데 요샌 잘 참는다. 자신이 그 나이 때 잔소리 듣기 싫어했던 것을 떠올리며. 몇 번은 참고 넘겼다가 한참 뒤에 가서야 조용히 불러 이야기하는 정도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런 안하무인 친구들이 1-2년 후면 자기들보다 한 수 위의 오만 방자함으로 악명 드높은 어린 후배들에게 된통 당하고 울분을 삭히며 김종국에게 찾아와 하소연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는 사실.
현재 자신이 직접 프로듀서로 참여하는 첫 솔로 앨범 작업이 진행 중이다. 조금 다른 음악을 해 볼 욕심과 기존 팬들에 대한 배려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작업이 많이 지체되었고 곡이 맘에 안 들면 무대에 서지 않겠다는 각오로 매달리다 보니 다 마친 작업을 갈아엎는 일도 빈번하다. 10월중으로 기한을 정해놓고 있으나 그것은 아직은 모를 일이다. 여전히 음악 마니아들을 위한 것은 아닐 것 같다고 살짝 귀띔해 준다. 앞서도 말했지만 ''철저한 대중 음악 지향 가수''도 설사 필요악일지언정 있어야 할 것 아니냐는 거다. 물론 가능성마저 닫아두지는 않기로 했다. 제대로 하는 ''변신'' 또한 언제고 가능할 것이기 때문에.
글.양중석(yajooo@oi.co.kr)
oimusic 2001년 09월호 양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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